🍀 작업장 ‘봄’의 인천 어르신이 들려주는 이야기 <사라진 것들, 남겨진 것들> 참여자 황순례(78) 님은 본인의 삶을 돌아보면 다사다난하고 굴곡진 인생이었다고 덤덤하게 회상했다. 그러나 무대 위에 선 순간만큼은 그간의 힘든 일은 다 잊을 수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연극을 만나 인생의 고통도 행복의 흔적으로 남긴 황순례 어르신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안녕하세요, 저는 황순례입니다. <사라진 것들, 남겨진 것들> 프로그램에 2년 연속 참여하고 있어요. 이 프로그램의 독특한 점은 참여자들의 이야기로 대본을 써서 연극을 올린다는 거예요. 참가자 각자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끌어내기 위해서 감독님이 다양한 걸 시도했어요. 연극을 처음 해보는 저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웠죠. (웃음)

간단한 스트레칭 같은 신체 활동부터 시작했는데, 바람이 불거나 번개가 치는 상황을 마임으로 표현하는 거예요. 그러다 '딸래미 집에 간다', '뭔가를 사 온다' 같은 간단한 설정 속에서 상황극을 하는 것으로 발전했어요. 그 과정에서 나온 각자의 이야기를 모아서 시나리오로 만들어요.

시나리오 구성에 제일 중요한 것은, 저희가 살아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연극을 만들었다는 거예요. 감독님이 저희가 살아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일부분을 따서 연극으로 만들 수 있게끔 도와줬어요. 그래서 저희의 시나리오 속에는 야구르트 장사를 했다거나, 공사판에서 미장하는 일을 했다거나, 각자의 이야기가 연극 안에 녹아들어 있어요.

저는 올해 연극에서 우울증이 있는 주인공을 집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친구 역할을 맡았어요. 극 중에서 주인공은 나이 많으신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고 우울증이 와서 계속 집에만 있죠. 사방에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요. 이 친구와 외출하려고 제가 별짓을 다 해요. (웃음)

머리도 빗겨 주고, 청소도 해 주고, 예쁜 카디건을 사다 입히기도 하죠. 콜라텍에 가자고 꼬시기도 하고요. 계속 설득해요. ‘나도 혼자야. 나도 집에 가면 아무도 없어. 남편도 가고, 애들도 시집 장가가고, 나도 작년에 우울증 걸려서 병원 치료 받았어.’ 하고요. 대사 중에서 ‘나도 혼자야.’ 이 문장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공감이 되어서 그런 것 같아요.

연극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도 많고, 좋은 친구들이 생겼어요. 작년에 85세 참여자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분이 연습 도중에 암 수술을 받은 거예요. 다행히 수술을 잘 마치고 복귀하셨는데, 싸우는 장면 같이 호흡이 격해지는 장면에서는 숨이 차서 힘들어했어요. 숨이 차는데도 열정적으로 하셔서 감독님이 중단시키기도 했죠. 대사가 많은 역할이었거든요.

그분은 대사도 잘 외우고 센스도 좋았어요. 딸과 다투는 장면이 있었는데, 딸이 10만 원을 달라는 대사를 해야 했었죠. 그런데 딸 역할을 하는 사람이 대사를 까먹은 거예요. 그때 그분이 “너 10만 원 달랬지?”하고 자연스럽게 이어나갔죠. 이제는 그분이랑 친구가 되어서 매일 전화해요. (웃음) ‘잘 잤냐, 빨래했냐, 밥 먹었냐?’ 소소하게 수다를 떨죠. 어제는 김장한 김치도 나눠줬어요.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부터 연극이나 무대에 재능과 흥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열일곱 살에 교회에서 주일학교 유치부 교사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동화를 읽어주는데 제가 연기도 잘 하고 동작도 크게 크게 하니까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던 기억이 나요. 나중에는 구연 동화 대회에 나가서 2등까지 했었죠. 지금 사는 구월동으로 와서 연극을 하기 전에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서 복지관에서 공연도 하고, 라디오에 응모해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어요.

저한테 연극은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 같아요. 연극을 하다 보면 세 가지가 다 보이더라고요.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 생각이 나요. 제 인생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옛날엔 이랬지. 지금은 이렇고, 미래엔 이렇겠지.’ 하고요. 요새는 연극을 하면서 요양원에 대한 생각을 해요. 연극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연극 내용 덕분에 요양원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죠. 딸과 사위, 손주들은 말리지만요. (웃음)

사실 연극을 비롯한 활동을 하면서 인생이 바뀌었어요. 힘든 인생을 살았거든요. 막노동도 했었고, 사적인 이야기라 여기서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다사다난한 일들이 많았어요.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집에서 살림만 했겠죠. 그런데 연극 프로그램을 만나서 인생이 폈어요. 요즘 제일 행복하고 재밌어요. 하다 보면 나이도 잊고 즐겁게 하게 돼요. 예전에도 열심히 살았지만 뭐랄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느낌이죠. 제 인생에서 정말 백 점짜리 경험이에요. 나이가 들수록 대사를 깜빡깜빡해서 걱정되긴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계속 하고 싶어요. 참가자들과 친목회도 하기로 했어요. 제가 모임장을 맡았죠. (웃음) 큰 차를 타고 어디든 놀러 가려고 해요.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