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 밖에서 만난 ‘내가 그린 그림’

2022. 9. 7.

이 메일이 잘 안보이시나요?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뉴스레터

Vol.23│2022.09.07

평범하고도 특별한 사람들의 문화예술교육 이야기

매주 뉴스레터 !ng에서는 <오늘의 인터뷰이에게>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레터 하단에서 확인해주세요.

🎨 <그림 그리고 싶은 날>은 계양구에 위치한 ‘미술달작은도서관’에서 매주 수요일(1기)과 목요일(2기) 진행하는 드로잉 프로그램이다. 신중년 참여자들은 도서관, 공원, 카페 등 여러 장소에서 서로의 얼굴을 그리고 거리의 사람들을 관찰하고 표현한다. <그림 그리고 싶은 날> 참여자 김철민 님은 만 50세가 되는 해 스스로 회사를 나왔다. 조직이 아니라 나를 위해 살고 싶어서 용기를 냈다. 퇴직 후 그림으로 나를 표현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났다는 김철민 님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한다.

오늘의 주인공 김철민 님 (사진 제공 : 인천문화재단)

50세에 명예퇴직, 지금은 자유인

인터뷰는 처음이에요. 선생님이 프로그램 참여 소감 말하고, 또 나를 조금 드러내면 된다고 해서 하겠다고 했어요. 나를 보이는 게 부담스럽다기보다 오히려 좋았어요. 사적인 것도 표출하게 될 거라고 해서 더 좋았어요. 그림이든 음악이든 글이든, 내 이야기를 하는 데 관심이 많거든요. 오기 전에는 안 떨렸는데 지금은 조금 떨리네요. 예상보다.

2021년 3월에 명예퇴직을 했어요. 만 50세였으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빠른 편이었죠.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어요. 사적인 시간이 많아서 좋아요. 회사 다닐 때는 마음만 있었지, 이런 거 배울 시간을 내지 못했거든요. 자아실현을 통해 제 뜻을 펼치고 싶어요. 아직 구체적인 건 정하지 못했지만요. 여전히 탐색 중이에요. 돈 버는 게 목적은 아니고, 타인이나 인류에 기여하면서 저도 보람 있는 일을 찾고 싶어요. 제가 교회에 다니는데 신앙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고요.

오전 9시부터 6시까지는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요. 출퇴근하는 사람처럼 매일 도서관에 가요. 오늘처럼 그림 배우는 날에는 잠시 시간을 비우고, 아니면 하루 종일 거기 있죠. 점심은 식당에서 사먹고요. 그림 배우고, 탁구랑 헬스하면서 하루를 보내요. 따로 소득 활동을 하는 건 없고 부동산 임대업으로 얻는 수익이 있어요. 수입이 많지는 않지만 경제적 어려움은 없어요. 아껴 쓰는 편이에요.

<그림 그리고 싶은 날>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김철민 님 (사진 제공 : 미술달작은도서관)

주먹 펴고 잼잼

국민연금공단에서 22년 근무했는데 그중 3년은 강사로 일했어요. 사내 강사나 대외 강사를 하면서 인적자원개발 교육도 하고, 고객서비스 강의도 하고요. 대학에서 교육공학을 전공하기도 해서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어요. 그때 평생교육이나 문화예술교육이 있다는 걸 알게 돼서 퇴직 후 이쪽으로 접근하는 데(?) 별로 어려움은 없었어요. 강의하려면 공부할 게 많잖아요. 두 시간 말한다고 해도 준비하는 데 이틀이 걸릴 때도 있고요. 지금처럼 수강생으로 있는 게 훨씬 좋아요. 행복해요.

뭐든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라 조직 생활이 힘들었어요. 목표를 정하면 몰두하고 매진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렇다고 늘 주먹을 쥐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내려놓은 거예요.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의 일원보다는 개인의 개념, 개인적 존재로 살기를 택한 거죠. 낮에는 괜찮아요. 후회하는 일도, 불안에 떠는 일도 없어요. 그런데 가끔 직장에 있는 꿈을 꿔요. 이상해요. 50이 아니라 60에 퇴직한다고 하면 그 10년 연봉도 있고, 사회적 위치도 그렇고 전혀 아쉽지 않은 건 아니죠. 하지만 내가 없어질 것 같고, 건강을 잃을 것 같은 초조함은 있었어요. 계속 주먹을 쥐고 있으면 새로운 걸 못 잡으니까 내려놓자는 결단을 한 거죠.

문화예술은 나를 보여주는 일

김철민 님이 그린 자화상

(사진 제공 : 미술달작은도서관)

지난해에도 미술달 작은도서관에서 그림을 배웠어요. 드로잉, 어반스케치도 하고, 엽서, 도자 접시, 전등을 만들었죠. 초상화 작업할 때는 함께 하는 분들이 모델이 돼주고 제가 모델이 되기도 했어요. 5분에서 10분 동안 쓱 그리는데 누군가 그림에 소질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면 어깨가 으쓱하죠. 인정받은 것 같고. 저는 그리는 것보다 모델하는 게 더 즐겁더라고요. (웃음)

엽서는 친구한테 보내고, 아들 생일 축하 카드로도 썼어요. 전등은 아크릴판에 조각칼로 그림을 그린 뒤 밑에서 빛을 쏘는 형태인데 지금도 집에서 잘 사용하고 있어요. 마스크 목걸이도 1년 가까이 쓰고 있고요. 무엇보다 전부 제가 한 거니까 의미가 있죠. 잘했든 못 했든 소중히 간직하게 돼요. 자랑하게 되고.

김철민 님이 제작한 아크릴 무드등 (사진 제공 : 미술달작은도서관)

그릴 때는 몰입하게 되잖아요? 잡생각이 나지 않아서 좋아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제가 그린 그림으로 뭔가를 만들고 그걸 쓸 수 있어서 좋아요. 형식적인 결과물이 아닌 실용적인 걸 만드니까요.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그림 배운 건 처음인데 재미있어요. 불면증으로 조금 고생하고, 우울증도 있었는데 그런 게 다 사라졌어요. 잘 그렸다고, 잘 했다고 말해주는 선생님과 동료들 덕분에 심적으로 안정되고 건강해졌죠. 삶에 활력이 생긴 점이 가장 큰 변화 같아요.

<그림 그리고 싶은 날> 활동사진

(사진 제공 : 미술달작은도서관)

참여자분들이 대개 저보다 열 살 많은 누님들인데 편하게 대해주세요. 남자는 저 혼자지만 괜찮아요. 프로그램 끝나면 같이 밥도 먹고 그래요. 소속이 없는 사람인데 이런 공동체가 있으니 고맙죠. 살아갈 수가 있죠. 그런 점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제법 도움이 돼요. 지금은 운동 외에 그림만 배우고 있지만 문화생활을 놓지 않을 거예요. 음악이든 글쓰기든 교양 강좌든, 도서관이나 문화센터에서 하는 프로그램 찾아서 평생교육으로 삼을 거예요. 저의 정서 함양과 취미 생활을 위해서요.

🔎 '미술달작은도서관'의 <그림 그리고 싶은 날>는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2022 인천문화예술교육 기획 지원’ 사업의 지원을 받아 운영 중인 프로그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