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레와도 농가먹어요

2022. 7. 20.

🧑‍🌾 벌레와도 농가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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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뉴스레터

Vol.16│2022.07.20

평범하고도 특별한 사람들의 문화예술교육 이야기

➗ 뉴스레터 !ng 16호는 이 땅 위의 모든 생명체와 함께 나누는 삶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 이 땅에 잠시 머물다 간다. 소유의 기쁨보다 나눔의 기쁨이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의 주인공 이현자 님 (사진 제공 : 옥우진 에디터)

벌레와도 농가먹어요

🧑‍🌾 2021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 <농가먹는 경작생활>은 작물을 키우고 거두며, 식물의 생장주기에 비추어 나의 생애주기의 변화 그리고 함께하는 이웃을 살피며, 땀과 나눔이 있는 새로운 농사 현장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노동을 즐거움으로 전환하고, 나눔으로 풍요로워지는 과정이다. 힘든 농사일도 기꺼이 즐길 줄 아는 나눔 전도사, 뉴스레터 !ng 16호의 주인공 이현자 님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만나 보자.

농가먹는 행복이 있어요

‘농가먹다’라는 단어의 뜻을 아세요? ‘나눠먹다’의 강원도 사투리라고 해요. ‘노나먹다’, ‘노나메기’라는 말하고 비슷한 계통의 단어인 것 같아요. 저는 처음에 ‘농사짓다’, ‘농사짓는 집’이란 뜻인가 했어요. 그러니까 ‘농가먹는 경작생활’은 농사를 지어서 함께 농가먹는 활동인 거예요.

농사도 지었지만 이름처럼 ‘농가먹는’ 것을 중요하게 배웠어요. 활동이 끝날 때 배추를 수확해 김치를 담갔어요. 벌레가 다 먹고 남은 것을 수확한 것이라 많지 않았어요. 김치를 담가서 나눠보니 작은 포기로 두 봉지씩 갖게 되었는데 선생님께서 한 봉지는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라고 하셨어요. 저는 혼자 사는 친구에게 선물했어요. 민망했지만 편지도 썼지요. 친구가 나중에 그러더라고요. “현자야, 나 네 편지 읽고 울었어.”

농작을 키울 때도 공부가 필요해요

처음에는 고추 키우는 법을 알고 싶어서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아버지가 생전에 항아리 화분에 고추를 키우셨는데, 돌아가시고 제가 아무리 고추를 심어도 잘 자라지가 않았죠. 아버지가 키울 때는 쑥쑥 자랐는데요. 이론 강의도 실전 강의도 듣다 보니 농사 지식이 많이 늘었어요. 이제는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항아리 화분에서 고추를 잘 키워요. 지력, 그러니까 땅의 힘이 떨어졌었는지 비료를 주니 나아지더라고요.

새로 알게 된 것들 중에는 재미있는 게 많아요. 작물에 물을 줄 때 이파리에 직접 물을 주면 안 되는 거 아세요? 잎에 물방울이 닿으면 그게 돋보기 역할을 해서 작물이 상한대요. 그래서 고랑과 이랑을 파고 이랑에 물을 흠뻑 줘야 하죠. 그러면 작물이 물을 빨아들여요. 저희 남편도 회사에서 작물을 조금 키우는데, 제가 이 방법을 가르쳐 준 이후로는 시든 상추를 들고 오는 일이 없어졌어요.

공존의 미학

저희는 다 친환경적인 농사법을 사용했어요. 직접 벌레를 잡고, EM발효 비료를 사용했죠. 선생님들은 손으로 벌레를 척척 잡으셨는데, 저희는 그렇게는 못 했어요. (웃음) 그렇게 벌레를 잡고 망으로 작물을 덮어둬도 별로 소용이 없었어요. 벌레가 다 먹었죠. 그래서 그냥 우리는 벌레가 먹고 남은 걸 먹는다, 벌레하고도 함께 나눠 먹는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농약과 화학 비료를 사용하면 벌레 먹지 않은 작물을 얻을 수 있었겠지만, 그러면 벌레하고는 나눠 먹을 수가 없잖아요?

페트병으로 상추 키우기 (사진 제공 : 이현자 님)

자연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요

프로그램은 끝났지만 경작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어요. 집이 주택이고, 산에 작은 밭이 있어요. 상추, 토마토, 고추, 백합, 호박, 방풍잎 같은 것들을 심어뒀어요. 프로그램에서 배운 페트병에 고추 키우기도 집에서 따라 해봤죠. 먹는 속도보다 거둬들이는 속도가 빨라서 정말 열심히 농가먹고 있어요. 가장 자주 농가먹는 사람은 앞집 아주머니죠. (웃음) 아주머니는 하나를 받으면 둘을 가져다주세요. 가까운 이웃과 농가먹을 수 있어서 기뻐요. 방풍잎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 심어뒀어요. 저는 방풍잎이 맛있는지 모르겠는데 친구는 좋아하더라고요. 친구가 맛있게 먹는다고 생각하면 즐거워요.

산에 있는 밭에 자꾸만 가게 돼요. 궁금하잖아요. 잘 자라고 있는지, 무슨 문제는 없는지.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 그런지 작물과 자연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참 편해져요. 소 먹일 꼴을 한짐 해서 내려오시던 삼촌, 삼촌이 들고 있던 주황색 참나리. 이런 것들이 제 유년 시절의 중요한 기억이에요. 그래서 지금도 어쩔 수 없이 자연을 보면 편안해지나 봐요. 땅과 함께 자란 사람들의 특징인 것 같아요.

자연에 있을 때 가장 편안하다는 이현자 님 (사진 제공 : 이현자 님)

음악과 몰입, 그리고 자연

주말엔 남편과 함께 밭에 가서 남편은 색소폰을 불고 저는 밭일을 해요. 남들이 보면 저는 일하는 개미고 남편은 베짱이로 보겠죠. (웃음) 그런데 저는 그냥 좋아서 밭일을 하는 거예요. 남편도 좋아서 색소폰을 부는 거고요. 저를 가장 잘 나타내는 키워드 세 가지는 ‘음악’, ‘몰입’, ‘자연’이에요. 남편과 각각 음악과 자연에 몰입하는 그 순간이 저를 한 장면으로 설명할 수 있죠.

아낌없이 주는 호박 (사진 제공 : 이현자)

아낌없이 주는 호박

제일 정이 많이 가는 작물은 호박이에요. 호박은 버릴 게 하나도 없어요. 열매는 찌개 끓여 먹고, 잎은 쪄서 먹고, 꽃은 전을 부쳐 먹어요. 그리고 그늘도 만들어주죠. 마당에 줄을 쳐두고 호박 넝쿨이 자라게 해뒀어요. 호박이 한창 자랄 때면 마당에 초록 그늘이 생겨요. 인공적인 그늘과는 다른, 바람이 통하고 초록 그림자가 지는 호박 그늘이에요. 호박 그늘 아래에 앉아서 차를 마시는 걸 정말 좋아해요.

처음 호박을 키웠을 땐 서툴러서 열매를 몇개 맺지 못했어요. 그 중에 두 개를 가지고 프로그램에 갔죠. 하나는 선생님 드리고, 나머지 하나를 가져갈 사람이 있나 물어봤는데 다들 갖고 싶어하더라고요. 갓 딴 호박이 얼마나 예뻐요. 윤기가 자르르 돌잖아요. 결국 가위바위보를 하기로 했는데 다 큰 어른들이 진심을 다해 가위바위보 하던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지면 정말 아쉬워하고, 이기면 행복해하고... 호박에 얽힌 소중한 기억 중 하나죠.

키우고, 만들고, 먹고, 나누고 (사진 제공 : 이현자 님)

키우고, 만들고, 먹고, 나누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음식도 참 많이 함께 만들어 먹었어요. 나물, 국수부터 차까지 다양한 음식을 함께 나눠먹었죠. 저는 집에서 키운 고추로 고추장을 담가서 나눠 먹기도 했어요. 제가 이것저것 다양한 것을 생각하고 도전하는 걸 좋아해요. 양파 고추장, 고구마 고추장, 호박 고추장 등 새로운 고추장들을 많이 담갔죠. 이걸 계기로 선생님이 발효 강의를 제안해주셨어요. ‘저는 발효에 대해서 아는 게 없는데요’ 하니 ‘고추장 담가보셨잖아요’라고 하셨죠. 그냥 경험을 함께 나누면 되는 거라고요. 그래서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오늘도 인터뷰 오면서 읽으려고 발효책을 가져왔어요.

땅에서 자라는 우리

식물의 생애주기를 지켜 보며 제가 다년생 식물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여기서는 씨를 뿌리고 있고, 저기서는 꽃을 피우고 있죠. 어느 한 단계로 정의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목표를 뿌리고 키우고 거두고 있죠. 앞으로의 새로운 목표는 사계절 유실수를 심는 거예요. 벌써 꽤 많이 심었어요. 올해부터는 대추도 나기 시작했고요. 작년에는 벌레 먹어 실패했거든요. 올해는 벌레를 하나하나 손으로 잡았어요. 그러니까 대추가 열리더라고요. 힘닿는 데까지 계속 경작생활을 이어나갈 거예요. 자연 속에서 키우고 수확하고 나누는 기쁨이 제겐 정말 소중하거든요.

🔍 <농가먹는 경작생활>은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2021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의 ‘생활학교’ 사업으로 운영된 프로그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