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다고, 그대 믿는다면

2022.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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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뉴스레터

Vol.11│2022.06.15

평범하고도 특별한 사람들의 문화예술교육 이야기

💡 딩동! 매주 수요일은 뉴스레터 !ng[잉]의 날!

연극 무대에서 대사를 까먹는다면?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여기 대사를 외울 필요가 없는 무대가 있다. 혼잣말하듯, 편한 상대와 대화하듯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면 된다. 때로는 말이 겹치고 어긋나도, 침묵이 하염없이 길어져도 상관없다. 즉흥극의 세계에선 실수란 없다. 원래 우리가 사는 모양이 그러하듯, 완벽하지 않아도 진실된 이야기. 2022 뉴스레터 !ng 세 번째 막을 올린다.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다고, 그대 믿는다면

✨ 오늘의 주인공은 극단 MIR 레퍼토리의 2021년도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그때 그 시절 인천에서는 시즌2> 참여자 정용민 님(50). 첫 무대의 강렬함을 잊지 못해 시작한 시민 연극은 여전히 긴장의 연속이었다. 정해진 대사 없이, 오로지 나의 이야기로 가득 채운 무대로 관객과 호흡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장벽을 넘으면 드넓은 세계가 펼쳐졌다는, 정용민 님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만나보자.

오늘의 주인공 정용민 님 (사진 제공: 정용민 님)

뒤늦게 알았죠, 인천의 매력

우리 아버지는 옛날에 대한통운 덤프트럭에 흑연탄이랑 석탄 같은 걸 싣고 다녔어요. 연안부두 근처 토지금고 쪽에 매일 컨테이너나 화물차들이 지나다녔죠. 회색 톤의 공장과 설탕 공장에서 나는 이상한 냄새들이 제가 느끼는 인천이었어요. 삼미 슈퍼스타즈(1982년 창단한 프로 야구팀. 인천 숭의야구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했다)가 매일 지던 것도 생각나네요. 사실 젊었을 땐 인천에 대한 자부심을 느낀 적이 많이 없어요.

프로젝트 제목이 ‘시민 연극’이었다면 조금 주저했을지도 몰라요. 나를 끌어당긴 건 인천이라는 단어였죠. 나이가 50이 넘어가다 보니 인천의 매력이 느껴지더라고요. 옛날 인천 이야기들을 무대 위에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사람들 사이에서 내 역할 찾기

연극 주제가 꿈이었잖아요. 생각해보니 인천에서 살아가면서 많은 걸 얻었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 내 역할을 찾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시민 연극, 봉사 활동, 우리 동네 문화 해설사 이런 걸 하고 싶어요. 인천은 내가 7~90년대를 살았던 동네기도 하고,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어 책을 통해서 설명해 줄 수도 있어요.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찾는 게 지금 제 꿈이에요.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맞춰서 계속 다른 역할을 찾고 싶어요.

<그때 그 시절 인천에서는 시즌2> 리허설 사진 (사진 제공 : 극단 MIR 레퍼토리)

도망치고 싶다가도 몰입하게 됐죠

이번 연극은 생애 두 번째 무대였어요. 첫 무대는 군대에서 계급이 낮아서 등 떠밀려 올라갔죠. 원래 무대에서 긴장을 즐기는 성격도 아니었어요. 그런데도 무대가 너무 재밌었어요. 그 기억이 자꾸 떠올라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무대에 다시 서 봐야지 했죠. 이번 무대도 처음엔 떨렸어요. 다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카톡방을 나가거나 전화기를 꺼놓고 도망칠 생각을 했대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처음 무대에 올라갔을 땐 맞은편 어두운 객석에 관객이 있다는 생각도 안 들었어요. 그냥 연습했던 걸 반복하고 있었죠. 그런데 중간에 내 대사에 반응이 일어날 때가 있잖아요. 관객들이 웃는다든가, 한숨을 쉰다든가 하면 관객들이 내 얘기를 듣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객들이 저한테 집중하는 느낌이 드니까 무대에 더 집중하게 됐고요. 나중에는 연기가 너무 신났어요.

사람들마다 내게 집중해주는 방식도 달라요. 어떤 사람들은 웃어줄 준비가 되어있다는 자세로, 어떤 사람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죠. 나중엔 표정은 달라도 각자의 방식대로 집중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맙더라고요. 모르는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으니까요. 에너지를 얻어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쉬움은 남아도 실수는 없어요

대사가 있는 연기가 아니라 즉흥극이잖아요. 다들 아마추어다 보니 오히려 더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남의 이야기를 외워서 하는 게 아니라 내 이야기를 하러 무대에 올라가는 거잖아요. 말을 더듬거나 논리가 부족할 수 있지만 내 이야기니까 자연스럽죠. 아마 대사가 정해진 연극이었다면 우리 같은 아마추어들은 어색하고 불편했겠죠. 중간에 실수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을 거고요.

처음엔 실수하는 게 두려워서 대사나 대화 순서를 미리 좀 짜야 하지 않냐는 의견도 있었어요. 그런데 즉흥극은 그런 것들이 다 포용되는 형식이잖아요. 대사가 부딪히거나 끊겨서 우왕좌왕해도 실수가 아니라 연극이 되니까요. 전문 연극이었다면 정적이나 대사의 충돌이 어색하게 느껴졌겠지만, 즉흥극은 그렇지 않아요. 애초에 대사가 없으니까요.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아도 실수했다는 생각은 없죠.

<그때 그 시절 인천에서는 시즌2> 준비 과정 사진 (사진 제공 : 극단 MIR 레퍼토리)

장벽을 넘으면 드넓은 세계가 펼쳐져요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나도 시작하면 괜찮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솔직히 일반인들에게 무대는 진입 장벽이 있는 공간이잖아요. 시민 연극이 무대에 대한 장벽을 낮춰줬죠. 한 번 무대에 발을 들여놓으니 다음에 한 걸음 더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저는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경험 때문에 40대 초중반까지 수영을 못 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수영을 배우다 보니 철인 3종 경기도 나가게 됐죠. 이번 시민 연극도 저한테 수영 같았어요. 진입 장벽을 넘어 첫발을 내딛자 더 넓은 세계를 만나는 경험을 했어요.

다음에 무대에 또 설 수 있다면

다음에 무대에 또 설 수 있다면 이런 내용도 해 보고 싶어요. 요즘 사람들은 너무 쉽게 부정적인 반응을 쏟아내는 것 같아요. 이런 현상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으로 이야기해 보는 거죠. 예를 들면 카페에서 뛰어다니는 아이의 부모에게 너무나 쉽게 ‘맘충’이라는 단어가 나온다든가. 애들 데리고 여기를 왜 오냐는 식의 말을 예전에는 쉽게 안 했던 것 같거든요. 누군가는 이런 생각이 고리타분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답을 정해두지 않고 관객의 판단을 맡기는 거죠. 이런 생각들까지 무대에 올려보고 싶어요.

🔍 '극단 MIR 레퍼토리'의 <그때 그 시절 인천에서는 시즌2>는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2021 인천문화예술교육 기획 지원> 사업의 지원을 받아 운영된 프로그램이다.

EDITOR│옥우진

섬세한 시선으로 인천인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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